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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2 요즘 애들은 통 술을 안마셔
  2. 2010.10.02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
이런 말들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요즘 후배들은 도대체 술을 안 마셔. 왜들 그렇게 몸을 사리는지, 원.” ‘후배’라는 말을 신입사원, 신참, 쫄따구… 뭘로 바꿔도 다 통한다. 요컨대 ‘요즘 애’들이 술을 잘 안 마신다는 거다. 이런 푸념은 주로 누가 할까? 아마 까마득히 높은 분은 아닐 것이다. 그런 분들은 저 아래 신참들이 술을 마시든 게토레이를 마시든 별 관심이 없다. 대체로 군대에선 상병급, 회사에선 팀장급, 대학에서는 3학년쯤 되는 사람들이 신참들의 주량에 관심이 많다. 상병이 되는 데에는 1년쯤, 3학년이 되는 데에는 2년, 팀장이나 작은 회사 사장이 되려면 적어도 5년은 걸리는데, 그렇다면 그 몇 년 사이에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말 ‘요즘 애’들은 예전보다 술을 덜 마시게 된 것일까? 혹시 ‘요즘 애들’ 위장은 알코올분해효소가 예전보다 덜 분비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사소한 궁금증도 잘 못 참는 나는 우선 주류 판매량 통계를 살펴본다. 이 통설을 입증하려면 젊은이들이 주로 먹는 술인 소주나 맥주의 소비가 줄거나 해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소주 판매량은 소폭 늘기까지 했다. 통계까지는 볼 것도 없고 신촌이나 강남역에 나가보면 ‘요즘 애들’이 술을 안 먹는다는 말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여전히 잘 먹고 잘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요즘 애들이 술을 안 마신다’는 이야기를 내가 ‘요즘 애들’ 시절부터 들어왔는데 아니 그렇게 매년 눈에 띄게 후배들이 술을 안 마시는 추세가 계속됐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만큼이나 술 안 마시는 나라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금요일의 도시는 언제나 인사불성이다. 그럼, ‘요즘 후배들은 술을 안 마신다’는 이 이상한 신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모 영화잡지의 전 편집장께서 흥미로운 힌트를 제공해주셨다. 편집장 시절, 그분 역시 후배 기자들이 몸을 사리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으셨다고 한다. 1차만 끝나면 영어학원이니, 헬스클럽이니, 다른 약속이니 하며 모두 사라지는 후배들…. 아, 언제부터 언론계가 이렇게 망가졌던가! 총명한 후배들과 허심탄회하게 영화계와 언론계의 현안에 대해 밤을 새워 토론하고 싶었던 이 편집장은 하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후배 기자들을 원망하며 홀로 긴긴 밤을 지새워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편집장에서 물러난 뒤에 누군가가 그분에게 비밀을 속삭여주었다. 후배 기자들이 술을 안 마시긴 뭘 안 마셔? 단지 그들은 편집장과 함께 마시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눈치없이 붙잡고 늘어지는 편집장을 따돌리느라 후배들은 곳곳으로 흩어졌다가 모처에 다시 집결하여 밤새도록 술을 펐던 것이다. 편집장이 하는 일이 뭔가? 기자들 갈구고, 기껏 열심히 써오면 빨간 줄로 죽죽 긋고, 때로는 아예 기사를 빼버리기까지 하는, 공포의 대마왕이 아닌가. 출판계에도 눈치없는 사장님들이 꽤 있다. 출판이라는 게 워낙 소규모다 보니 사장님들은 사장이 된 뒤에도 내심 자신 역시 선배 편집자(혹은 영업부원)일 뿐이라고 여긴다. 회사는 가족으로, 직원은 친척 동생쯤으로 생각하며 사랑하고 아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 생각’이다. 월급 타가는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사장은 사장이고 데스크는 데스크고 과장은 과장이고 상병은 상병이다. 사장과 앉아서 도대체 누굴 씹는단 말인가? 결국은 사장님 훈계나 듣게 마련이다. 아니, 동료들과 모여 앉아 권커니자커니 사장 흉도 보고 뒷담화도 까는, 흥미진진한 술자리가 곧 펼쳐질 텐데, 왜 사장 앞에서 고개 숙인 채 말라비틀어진 훈제족발이나 먹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얼마 전 예의, ‘요즘 직원들은 술을 안 마신다’고 푸념하는 어느 회사 사장님께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장님, 직원들에게 씹혀주시는 것까지가 사원복지입니다. 금일봉이나 주고 일찍 들어가서 주무세요.” 진실은 고통스럽다. 그들은 술을 안 마시는 게 아니라 당신과 마시는 게 싫은 것이다.

글: 김영하 소설가
2005.10.2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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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늘도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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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문예창작과가 우후죽순 처럼 만들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목소리 큰 선생과 분필만 있으면 돼서 그랬을까, 하여튼 많이 생겼다. 이 문얘 창작과는 말할 것도 없이 문예물을 창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학생들은 매 학기 소설이나 시를 써야 한다. 선생들은 학생드이 작품을 쓰도록 독려한다. '써라, 써라, 써라' 계속되는  독려에 많은 학생들이 오히려 문학에 흥미를 잃는다. 잘하던 짓도 누가 시키면 그때부터 하기 싫어지는게 인간이다. 반대로 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다. 예로 부터 금서처럼 인기 있는 책은 없었다. 읽지말라면 더 읽고 싶고 쓰지말라면 더 쓰고 싶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에겐 권장이 아니라 금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혹 이런방식은 어떨까?

 

우선 문창과 학생들을 모두 기숙사에 집어넣는다. 학년에 따라 쓸 수 있는 글의 종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예를들어 1학년은 절대로 단편소설을 쓰면 안 된다. 만약 단편소설을 쓰다가 적발되면 바로 집합이다. 선배들은 침대 밑에 숨겨둔 원고를 꺼내 후배의 면전에 들이밀며 다그친다.

"너 이거 단편아니야?"

"아니에요.그건 제 일기에요."

"뻥까고 있네. 야 임마 무슨 일기가 3인칭이야.엉? 어쭈,..자세히 보니 플롯도 있고 분량도 80매인게 수상쩍은데?야 우리가 단편하고 일기도 구별 못할줄 알아?엎드려 뻗쳐.1학년이 감히 단편을 써?"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쓸게요."

이런 공포분위기 속에서 창작열은 기이하게 불타오른다. 어떤 1학년은 담요를 뒤집어 쓰고 남몰래 단편을 쓰고 어떤 2학년은 방학을 틈타 장편소설을 씉낼것이다. 1학년이 신춘문예라도 당선이 되면 학교는 학생을 제적시킨다. 졸업장과 바꾼 한편의 소설. 이 얼마나 비장한가. 감방에서 문학사의 걸작이 많이 나온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최근에 독서교육에 관한 심포지범이 많이 열리는데 늘 뻔한 소리다. 독서 자격증을 주자느니 독서감상문을 쓰게 하자느니 하는 속보이는 권장의 술책뿐이다. 나는 정말 독서를 장려하고 싶으면 차라리 금지를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일단 웬만한 현대소설은 다 금서로 정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도 빼버리고 물론 수능에도 출제하지 않는다. 가방검사에서 나오면 당장 정학이다. (이건 진담인데 나는 교육당국이 부디 내 소설을 모두 금서로 지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없던 아우라도 홀연생겨날것이다.)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교환하며 은밀히 금서들을 돌려보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킬것이다. 금서를 읽는 학생들은 학교의 스타가 되고 그 용감함으로 뭇 학생들의 선망이 된다. 갑자기 소설은 논술대비용 참고도서에서 인생을 건 모험으로 승격될 것이다. <b사감과 러브레터>는 음란하다는 이유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여선생을 희화화 했다는 이유로,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욕설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신경숙의 <풍금이 잇던자리>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이유로 금서다. 말이 안되도 좋다. 하여간 작은 꼬투리만 잡혀도 무조건 금서로 지정한다. 아.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선생님 눈을 피해 야금야금 금서를 훔쳐보는 시간.

 그러나 나의 이런 실없는 상상이 실현될 리는 없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 지루하고 계몽적인 권장의 술책말고는 대안이 없단 말인가. 터부가 사라진 사회. 뭘해도 불온하지 않은 세상. 쓸수 없는 것이 없고 읽지 못할것이 없는 사회. 읽고 쓰기를 한없이 권장하는 사회. 그런데도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신이 안나는 사회. 그게 우리모습이다. "문창과 학생인데요. 써야할 글은 많은데 잘 써지지가 않아요."라며 조언을 구하는 독자에게 "선생들이 싫어하는 글을 쓰세요. 그러면 아주 신나게 써질겁니다."라고 말해주었는데 말해놓고보니 뜨끔했다. 어떻게든 우리는 좀더 불온해질 필요가 있다. 가끔은 대숲에라도 나가 외쳐야 하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김영하/소설가
2005.10.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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